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크리스챤 디올 (문단 편집) == 역사 == 패션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디올]]의 메이커로 1946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시작되어 디올의 명성 대비 의외로 역사가 짧은 편이다. 원래는 섬유 재벌 마르셀 부삭에 의해 당대 유명한 브랜드였던 필립 에 가스통의 디자이너가 될 것을 제안 받았으나 디오르는 본인 이름을 내걸고 새로운 브랜드를 하고 싶다며 거절하여 결국 부삭의 후원을 받고 디올을 런칭하게 된다. 종전 이후 화려하고 극도로 여성적인 옷을 만들어 [[코코 샤넬]]의 간소화되고 편한 디자인의 쇠퇴를 알리는 계기가 되는데, 이는 전쟁 직후의 망가진 나라를 생각하지 않는다며 수많은 사람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었지만, 반대로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는데, [[미국]]의 잡지 하퍼스 바자의 당시 편집장이 "이건 정말 본 적 없는 옷(NEW LOOK)이다"라는 극찬을 하면서, 크리스찬 디올은 "뉴 룩"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갖게 되었다. 디올의 뉴 컬렉션을 구경하고 싶어 안달이 난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엘리자베스 공주]]와 [[마거릿 로즈|마거릿 공주]]를 위해 [[버킹엄 궁전]]에서 비공식 패션쇼가 열렸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였다.[* 이후 [[마거릿 로즈|마거릿 공주]]는 21번째 생일날 디올의 커스텀 드레스를 입었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드레스’ 라고 말했다.] [[1957년]], 브랜드 전개 십 여년 만에 창업자 크리스티앙 디올은 불행히도 52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그 후계자는 디올의 제자이며 패션계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 맡게 된다. 당시 그의 나이는 21세... 그가 역임한 기간은 매우 짧았으나 생로랑은 트라페즈 드레스 등 조금 더 간소화되고 편한 디자인을 내놓아 디오르 사후 직후만 하더라도 폐쇄를 고려하고 있던 디올을 다시 최고의 브랜드로 올려놓게 된다. 하지만 이후의 디자인은 성공적이지 못했으며, 59년 컬렉션은 대중과 미디어 모두의 질타를 받게 되었다. 생로랑은 그 후 쫒겨나다 시피 국적 문제로 군입대를 해야 했으며, 디올은 또 난관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후 1960년 마크 보한이라는 디자이너가 맡게 되며 디올은 기성복 컬렉션, 향수, 남성복 등의 분야까지 확장된다. 대중지향적인 디자인으로 이 시기 디올은 특히 [[할리우드]]를 비롯한 영미권으로 매출 다각화에 성공. 다만 80년대 모기업이 부도 위기에 처하게 되어 디올을 포함한 모기업은 통째로 [[베르나르 아르노]]에게 인수되고 얼마 가지 않아 아르노는 디올과 몽 마쉐 백화점을 제외한 모기업 전체를 전부 팔아 버리며 철저한 구조조정에 돌입한다. 1989년 지안프랑코 페레가 보한을 대체하게 되었으나 부침을 겪으며 97년 [[존 갈리아노]]가 메인 디자이너로 임명,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재림이라 불리며 과거의 디올의 명성에 걸맞는 화려한 오트 꾸뛰르를 선보인다. 허나 반유대주의적인 발언에 히틀러 찬양, 여성 비하 발언까지 한 영상이 퍼지며 해고당한 뒤[* 이러한 발언에도 불구하고 재능은 감출 수 없는 노릇인지 현재는 [[메종 마르지엘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패션계에 복귀했다.], 그의 오른팔이었던 빌 게이튼이라는 디자이너를 잠시 디자이너로 앉히지만, 그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아닌 대체용 디자이너일 뿐이었다. 그렇게 별 성과를 내지 못한 채 2년의 시간이 흐르다 전 질 샌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벨기에]] 출신 [[라프 시몬스]]를 영입한다. 미니멀리스트로 정평이 난 디자이너다보니 여성스럽고 우아한 디올 하우스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으나, 결과적으로 초기 디올의 정신을 부활시키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 과정은 그의 첫 디올 쇼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디올 앤 아이>에 잘 드러나 있다.] 2011년 대비 판매량도 60% 가량 올랐다고(2015년 기준). 한편 디올 옴므의 경우 [[에디 슬리먼]]의 오른팔이었던 남성복 디자이너 크리스 반 아쉐가 계속 디렉터를 맡아오고 있다. 그러던 2015년 10월 라프 시몬스가 재계약을 거절하고 디렉터 자리에서 갑작스럽게 물러나서 여러 인물들이 후속 디렉터로 거론되었다. 반면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크리스 반 아쉐는 디올 옴므에만 집중하기 위해 본인의 레이블까지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라프 시몬스를 이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정해졌다. 후임자는 바로 [[발렌티노]] 출신의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로, 2017년 S/S 컬렉션 데뷔와 함께, 그 전의 디올과는 다른 이미지로 접근하여, 신선함을 안겨주고 있는 중. 특히, J'ADIOR이라 적혀있는 리본 디테일의 슬링백과, 17 S/S 컬렉션에서 선보였던 아이템 중 "We should be all femminist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한다.) 라는 티셔츠는 화제를 몰고 오기도 했었다. 키우리의 디올 CD 부임은 꽤나 상징적인 의미가 크기도 한데, 여성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하우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동안 디올을 걸쳐갔던 CD들은 전부 남성들이었다.[* 크리스티앙 디올 → 이브 생 로랑 → 지안 프랑코 페레 → 존 갈리아노 → 라프 시몬스] 디올의 역사상 첫 여성 CD이기도 하고, 그 동안 남성 디자이너들이 보여주었던 감성과는 달리 '여성을 가장 잘 아는 여성'으로써, 앞으로의 디올을 어떻게 이끌고 나갈지 다들 기대하는 분위기. 다만 남성복의 킴 존스와는 달리 FW23 현재까지는 컬렉션 평가가 그리 뛰어나진 못한 편이다.[* 무대세트 & 음악 대비 의상 디자인의 부조화, 셀럽 마케팅 등이 주요 비판 요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